얼마 전에 논픽션 다이어리를 봤다. 영화 자체는 몇몇 의도적으로 불친절한(멋낸) 부분과, 한국의 천태만상을 급하게 꿰맞추려고 한 부분(조금만 더 풀어 줬으면 어땠을까!),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겠어서 자막을 넣어 줬으면 했던 부분만 제외하면 매우 빼어났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수업 듣던 생각도 나고, 다큐멘터리 필름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신선하고 그랬다. 아무튼 이 영화는 강력한 질문을 여럿 던지고 있는데 특히 나에게는 살인 범죄와 그 단죄의 적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것,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인 것,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한 것 중에서 가장 단죄하기 쉬운 것은 아마도 첫번째일 것이다. 이를테면 지존파 사건처럼, 살인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실제로 가장 강력한 사법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을 받는 살인이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사람을 비자연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어떤 개인의 인생을 끝장내 버린다’는 액면 그대로의 살인 개념을 적용해 본다면 국가에 의한 사형 구형, 성공한 쿠데타에 의한 학살, 전쟁 중의 몰살 등도 모두 살인이다. 단지 그 책임 소재가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사회적 필요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또, 설마 무너지겠어 하고 안일하게 대처해 몇 백명을 묻어 버린 삼풍백화점 관계자라든가, 이 철근 하나 빼 간다고 다리가 끊어지진 않겠지 하고 돈을 빼돌린 성수대교 공사 책임자라거나, 혹은 그렇게 빼돌리는 관행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만든 한국 관료들이라거나, 이들도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특수한 맥락에서의 살인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뭐 이건 사형 찬반론과 궤를 같이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너무 길어질 것 같지만 간단히 적어 두자면, 윤리적이고 효용적인 입장에서 사형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인생을 끝내는 것과 등치할 만한 죄악은 없다. 모든 이의 목숨이 어떤 범죄도 상쇄할 만큼 가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목숨의 사회적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인간 사회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죽어버리면 아예 보정이 불가능하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왜 얼마나 잔인하게 피해자를 죽였는가가 죄의 크기를 따지는 데 큰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 칼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여서 시체를 먹은 것 사이 범죄로서 얼마나 큰 질적 차이가 있기에 사형 유무가 나뉘어지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사람마다 잔인함에 대한 감각은 제각각이고 그것에 가치평가를 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살인에 책임이 있는 책임 당사자가 왜,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죽였는가에 따라 징벌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더 명료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사회가 벌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죄의 크기를 논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문민정부 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이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유례없이 빠르게 사형을 구형해 버렸다면, ‘살인’의 층위에서 그는 확실히 책임이 있다. 돈 때문에 부실 점검과 대응을 한 삼풍백화점의 오너도 마찬가지고, IMF 사태를 초래해 수많은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한 정치 세력, 두말할 것도 없이 ‘성공한’ 쿠데타로 나라의 꼭대기에 오른 수장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광주 학살극을 진두 지휘한 사람들… 이들에게는 지존파 살인자들처럼 사회 구조적 원인이 있었으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 자신의 손은 깨끗하게 놔둔 채로, 엄청난 규모의 살인을 사주한 자들이다. 스스로 살인을 했다고 생각도 안 할. (‘죽인 동물의 사체’가 아니라 ‘고기’를 사 먹는, 도살에서 자유로운 소비자들처럼.) 나는 사실 그러니까 이것이 더 악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사실, 죄질을 논하는 것도 논하는 거지만 살인의 책임 소재를 규정하는 것부터도 권력자나 언론, 기타 사회적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이상하게 빠지기 일쑤인 것 같다.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의 경우 책임 소재를 유병언 같은 특정 아이콘에게 돌리고 소요를 마무리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막막해서 아예 책임 소재를 밝히길 포기하기도 한다. 독일은 세계대전 이후 살인에 대한 책임 유무를 면밀하게 가려내려고 노력했다. 전쟁 중 살인에 관련된 사람들을 재판대에 세우고 저마다의 맥락을 고려해 책임 수위를 합의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거대한 반성이었고 전쟁을 트라우마화하는 사회적 계몽의 과정이었다. 히틀러 악마화로 끝이 아니라 지난한 일상의 과정을 통해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자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살인이 일어났다면, 끝까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누구에게 죄를 물을 것인지 사회적으로 끈질기게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사람이 죽임 당했다는 것은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 자기 변호가 불가능하니까, 누구라도 그렇게 죽을 수 있어서는 안 되니까, 살인을 막는 것은 같은 종으로서 산 자의 의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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