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귀찮음에 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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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고물상이 하나 있다. 꽤 규모가 커서, 이 동네 주변의 고물들이 다 모이는 것 같은 곳이다. 언뜻언뜻 보이는 고물상 안의 풍경은 별세계 같았다. 누가 대체 저런 오래된 걸 아직도 갖고 있었나 싶을 정도의 카세트 플레이어라든가, 팔다리 다 부러진 미미 인형, 근처 커피숍의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종이컵 등이 비논리적으로 함께 있어, 아유 재미있겠다 저기서 일하면 좋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한없이 천진한 마음으로 보면 고물상의 풍경조차 제법 빈티지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운동(을 빙자한 산책)을 나갔다 오는데 그 고물상 앞에서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폐지 값을 받아 가고 있었다. 리어카도 없는지 한쪽 바퀴가 다 떨어져가는 유모차를 세워 두고 한 손에 쥔 돈은 그러니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천 몇 백원에 불과했다. 그 돈을 받으며 활짝 아주 활짝 웃는 쭈그렁한 할머니의 드문드문한 이빨이 심장을 후려쳤다. 이 저릿한 가난과 빈곤이 뚜벅뚜벅 다가와서는, 철없도록 깜찍한 나의 시선과 신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 3천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쯤은 명함도 못 내밀 오늘의 구매목록을 지그시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서럽고 또 미안하고 왜 이렇게 불쌍한지 이해가 안 돼서 순식간에 나와 세계의 풍경이 낯설었다.

나 같은 인간들이 전전긍긍히 이 동네에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별 일 없을 게 뻔한 노동절 집회도 가고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도 할 테다. 리트윗도 하고 좋아요도 누르고, 가끔은 분기탱천하여 블로그에 몇 마디 찌끄리기도 할 것이다. 이것들은 잘못하면 모두 ‘제법 빈티지한’ 행위가 되기 쉽다. 나는 종종 도닥이는 의미에서, 언제나 낯선 처참함과 탈출구가 없는 기분은 끔찍스러우니까, 일부러 이 함정에 빠졌다가 그러기도 한다. 이걸 자기 위안이라고 한다. 그 자체로는 별 해악은 아니겠지만 자위를 전시하고 강요하면 추하고 나빠지기 십상이다. 좋아 보여서 괜찮아 보여서 좀 좌파적이고 정의로워 보여서 래디컬하고 진보적인 느낌이라서 등등 액자 바깥의 인상비평하는 패션 좌파는 그러니까 고물상의 빈티지한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실제로 그 풍경의 구성 요소인 폐지 줍는 할머니와 2천원에 대해서 함구하게 되기 쉬운데 그건 되게 추한 일이다. 액자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좋아요나 리트윗이라고 할 지라도 뭔가 정치적인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의미와 맥락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다고 생각을 미루고만 있으면 적립된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닥쳐와서 엄청나게 괴롭게 되거나 반작용이 나고 말 것이다. 얼마 전에 노동절 집회 다녀왔다. 마지막에 정리 집회도 안 하고 시청 광장 분향소에서 끝맺었는데, 여러모로 참 어중간했다. 뭐지? 걷기 운동 시킨 건가? 길막하고 행진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실제로 많은 행인들이 야유를 보냈음.) 쪽수로 밀어붙이는, 일종의 무력 행사인 셈이다. 그렇게 여러가지를 정지시키면서 하는 집회인데 뭔가 이루고자,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야 하지 않나. 정권 퇴진이 아니라 노동 조건에 대한 주장을 해야 하지 않나. ‘우리 조직의 힘을 보여주마’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우리는 이러이러한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민중가요 듣고 부르는 재미는 있었다. 근데 그럴 거면 그냥 문화제 같은 걸 하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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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답답해서 끝없이 이기는 히어로즈의 야구나 보고 살고 싶다. 현실은 오늘 기아한테 연장까지 가서 끝내기로 졌음…… 치유하는 의미에서 서건창 선수의 귀여운 영상을 다시

……으아 (특히 요새 잘해서 더더욱) 초초초초초이쁨.

그리고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를 이제사 처음으로 접해서 짜릿짜릿한 그래픽 충격을 선사받는 중. 으아. 이런 사람들은 그래, 만화가를 할 디엔에이를 타고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으아2…

아… 정신 차려 보면 어김없이 소탈하게 끝나는 요새의 포스팅. 나름 정신 단도리라고도 할 수 있지 싶다? 야구든 만화책이든 보고 힘 내서,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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