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고 싶다.
요새 삶은 딱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회사에 무척 실망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며, 불안불안 이어지던 연애 관계 청산도 지지부진한 상태고, 한국은 초현실적으로 끔찍하고, 연남동은 하이-스타일리시해서 보기 싫은 꼴들이 너무 많이 뵌다. 온갖 욕구들이 통제되지 않는 내 몸뚱아리도 지겹고, 술을 마셔도 숙취만 더할 뿐 정신은 말짱하고, sns도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탈출의 꿈을 꾼다. 그러나 탈출이란 건 삶에서는 기어코 도피라는 방식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이 퍼져 있는 지리멸렬한 상황들의 잿더미에서 쓸 만한 걸 그러모아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쨌든 나는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이 있다. 그냥 놔 둬도 되지만 놔 두면 안 된다. 1년 살고 말 것도 아닌데 그래도 몇 십년은 이 라이프를 초 단위로 겪어내야 할 텐데 그저 버티는 걸로는 온전하게 나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든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미치거나 죽거나 뭔가에 병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간신히 그러지 않도록 다잡는 데 에너지를 다 쓰고 있다.
스물 여덟이라는 건 정말 어중간하다. 여러 가지 결절점들이 버겁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결혼을 하고 싶기도 하고 평생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고 싶다면 지금쯤은 안정적으로 연애를 지속하고 있어야 할 텐데!) 편집자를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계속 하고 싶기도 하다. (계속 하고 싶지만 회사에 다니는 걸 그만두고 싶다는 게 정확하다.)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했다가도 여포 등의 사정과 커리어 단절을 생각하면 풀이 죽는다. (고작 1년 외국에 다녀오자고 여포를 1년 못 봐야 한다는 건 너무 슬프다.) 이들 말고도 되게 많다. 생활적으로는 경제 계획이나 시간 배분 같은 문제도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기만 하다. (시간과 돈은 왠지 그 과정에서 흩어지기만 하고…) 전 남자친구처럼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생겼다. (2년을 완벽하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 인생에 더 나올지 모르겠다…) 봐도 이야기를 이어가기 어려운 과거 친한 친구들이 많아져만 간다. (우리 인생에 공유하고 싶은 게 이제 없기 때문에.) 몸은 급속하게 나이를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여전한 것 같기도 하다.
참, 아무것도 포기가 안 되는 어려운 시기다. 어중간하게 쌓인 인생의 기억들이 아무 생각 없이 싸지르던 과거에 비해 이래저래 갈피를 못 잡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선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나빠져만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좋은 시기가 있었나? 사실 내 많은 ‘좋은’ 시기는 ‘좋다고 믿은’ 시기였다. 마알간 얼굴로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존증들의 시기였다. 그래서 조금 기계적인 결론이지만, 하나에 병적으로 의존하는 건 나중에 리스크가 커지고 게다가 이젠 그럴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분산 의존을 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밋밋한 평화의 상태를 이룩한 후 몇 가지 방향을 결정해 보자는 것이다.
분산 의존 리스트의 최상단에는 일단 야구(라기보단 넥센히어로즈!)가 있다. 그리고 소수의 착한 친구들도 있고. 여포는 이제 부양가족이라 잘 모르겠지만 여포의 아름다움은 가히 의존할 만하다. 그리고 어… 잘 모르겠다. 더 늘려 가야지.
아 참으로 소탈한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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