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좋아하는 선생님의 강의를 갔다. 강의 장소는 통인시장 근처의 모처였다. 못 본 새 그 거리도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엔 전체적으로 번잡스럽고 사람 사는 곳 같았는데 소문대로 핫한 장소가 돼 가고 있는지 오밀조밀 세련된 젊은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많이 봐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며 간신히 시간 맞춰 교실에 도착했다.

강의는 인디언에 대한 강의였는데 강의 자료 1페이지에는 미국 건국에 대한 조건들이 영어로 적혀 있었고, 그 뒷페이지에는 윤동주의 ‘서시’가 실려 있었다. (처음엔 이면지인 줄 알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니.

조금 뜬금없게도 통인시장 근처의 온갖 세련된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떠올랐다. 거대 자본이 가볍게 한 대 후려친 것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그 손때 묻은 거리라든가, 불도저에 밀리듯 파내어지는 밀양의 논 할머니 할아버지들, 쓱싹 지워진 구럼비, 뭔지도 모르고 죽어야만 했던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 같은, 그런 힘없이 소멸해가는 것들이 떠올랐다.

오늘 본 서경식 선생님의 무시무시하게 비관적인 칼럼도 얽혀 떠오른다. 선생님은 종종 그러하듯 고전 ‘루쉰’에 비춰 세상을 말한다.

게다가 최근 30년간 나는 오히려 많은 청년들의 피를 봐야 했다. 그 피는 층층이 쌓여서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덮어 눌렀다. 나는 단지 이런 붓을 놀려 몇 구절의 글을 씀으로써 진흙 속에 작은 구멍을 파서 헐떡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게 어찌 된 세상인가.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 나는 잊어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 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루쉰이 쓴 ‘망각을 위한 기념’이라는 글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서 선생님은 예전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라는 부분을 비관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 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에 대해 비관한다고 한다. 정말 더 이상 어떻게 좌절해야 할 지도 모를 것 같은 말이다.

인디언 같이 지금 세계에서 패배한 것처럼, 혹은 패배가 예정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그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 오늘 강의해 주신 선생님과 윤동주 시인이 말하듯 참 괴로운 일이다. 잔인하게 죽어가는 것들을 응시하는 일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루쉰이 말하듯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 아까 그 칼럼에서 나오는 나카노 시게하루도 썼다.

“잊고 싶다”는 것은 반어가 아니다. 루쉰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진흙 속에서 코만이라도 내밀고 숨을 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런 상황 속에 루쉰은 처해 있었던 것이고 그렇게 썼다.

사실 루쉰의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나는 꽤나 안락하게 살아왔고, 이 평온한 삶에서 도출되는 여러 가지를 정말 사랑한다. 애써 많은 죽어가는 것들을 보고 듣지 않고 살고 있었고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싶다. 탄식하고, 분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더 나아가 지금의 이 세계를 두려워하고 또 더 좋은 세계를 낭만 없이 희망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아마도 그것은 그렇게 한, 존경하는 선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백여 년 전 윤동주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썼다.

아까 서 선생님의 칼럼에서 인용된 루쉰은 “생각건대,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라고 썼다.

오늘 강의를 들은 선생님이 쓰신 이 책은 ‘비틀거리며 걷더라도 한 발씩 내딛어야 한다. 설령 제자리걸음을 한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소중하다.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라고 끝맺는다.

무엇보다도 오늘 울컥 마음이 움직인 부분은, 2천 년전의 <논어>가 담담하게 그 꼿꼿한 모양새를 서술하는 대목이다. (역시 오늘 강의에서 선생님이 주신 자료다.)

논어 자로가 노나라의 郭門, 石門 밖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 문안으로 들어갈 때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온 사람이오? 자로가 말했다. 공씨(공자)의 사람이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아, 저 도대체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을 내걸고 무리인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애쓰는 그 사람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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