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씨엠립 여행 1. 도착 그리고 캄보디아 사람들

갑자기 1주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남들 그렇게 염원하는 1주 휴가인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서 놀기엔 아깝다는, 다소 사치스러운 이유로 해외여행을 갑작스레 결정. 얼마나 갑작스러웠냐면 처음에는 지인이 있는 필리핀으로 가려고 했다가 예매 직전에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으로 바꿨는데, 그렇게 여행지를 최종 결정한 게 출발 이틀 전이었다;;; 게다가 안 가면 안 갔지 패키지 여행은 못 견디는지라 겁없이 에어텔 자유여행 상품을 고른 탓에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앙코르와트와 캄보디아 현대사 등의 관련 자료를 허둥지둥 읽어치우고, 못 다 읽은 것은 아이패드에 저장한 후, 부랴부랴 옷을 꾸겨넣은 가방 하나만 들쳐매고,  전날 술을 마신 게 깨지 않아 알딸딸한 정신을 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솔직히 이때만 해도 80만원 쓴 게 아까워 기필코 뭔갈 얻어와야겠다는 의무감으로 피곤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옆자리 중년 부부(?)가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마냥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도 짜증났고…

이래저래 늦어져 씨엠립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2시경. 비행기에서 내리니 적적한 밤공기에 이국적인 열대풍 나무들이 바람에 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얇은 긴팔 가디건을 걸치고 있기에 딱 알맞을 정도로 선선했다. 그러나 서정적인 감흥도 잠시, 비자 발급 과정이 혼돈의 카오스였다 : 일단 줄을 서서 비자 신청서와 여권을 제출한다. 신청한 순서대로 비자가 나오는 게 아닌데, 비자를 받는 창구 근처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고 무슨 시장에서 경매하듯 이름을 소리쳐 불러 비자 발급 심사가 완료된 사람에게 여행 비자가 찍힌 여권을 준다. 문제는 내 이름을 언제 부를 지 기약도 없고 부르는 사람의 발음도 안 좋은데다가 시끄러운데 마이크도 없어서 엄청 집중하지 않으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줄 모른다는 것… (게다가 이 전 과정이 팁을 주면 빠르게 처리된다! 나는 안 줬지만.) 게다가 입국 심사 때 출입국 직원은 1달러 팁을 요구하고… (안 줬다.) 이게 1시간 가량 걸리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간신히 출구로 나오니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선한 인상의 픽업 기사가 있었다. 차를 타고 숙소인 압사라 앙코르 호텔에 도착해서 씻고 나니 새벽 3시경이었다. 일정을 하나도 안 짜고 왔지만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늦게 잠에 들었다.

생각보다 엄청 좋은 호텔이었다. 일회용품이 이것저것 다 잘 챙겨져 있고 안 가봤지만 수영장도 있는데다 아침 부페가 엄청 좋음!!! 다만 한국인 관광객이 참 많았다…

다음날, 호텔 앞에 도열한 툭툭 기사들 중 한 명과 짧은 흥정 끝에 2불을 주고 시내로 나갔다. 여행기들을 훑어보고 괜히 겁먹었는데 어렵지 않음. 시세를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4일간 이동 수단은 대부분 툭툭이었는데, 툭툭을 타고 바람을 맞으면서 이동하는 건 정말 시원하고 재미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탄 툭툭. 기사의 이름은 석군(?).

일정 상담도 하고 박물관 할인 바우처도 받고 반나절 투어도 신청할 겸 한인 여행사 Global을 찾아갔다. 뭔가 엄청나게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한국 분들이 계셨고, 무계획 상태로 조금 혼란 상태에 있던 나를 진정시켜 주셨다. 일단 도저히 혼자는 갈 수 없을 듯한 톤레삽 오후 투어를 가기로 하고, 압사라 댄스를 볼 수 있는 레스토랑 저녁 예약도 부탁했다. 여행사를 나와 근처에 있는 박물관 관람을 심드렁하게 마치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투어 시작까지는 두 시간 가량 남은 상황. 일단 발길 닿는 곳으로 가다 보니 관광객이 도통 없는 Siem Reap River 근처에 다다랐다.

이 날도 참 더웠지만 다음날과 다다음날에 비하면 겨울 날씨였지…

더위로 몽롱한 가운데서 어슬렁거리며 쉴 데가 없나 살펴보다가 현지 사람들이 노점에서 뭔가 먹는 걸 많이들 사고 있길래 가서 봄. 이곳저곳에서 바나나 구운 것과 오른쪽의 바나나 잎에 싸서 구운 밥(?)을 많이 판다. 주로 주민들이 식사 대용으로 많이 사 먹는 것 같다.

이 사진 이후로 캄보디아 현지인을 거의 안 찍었다. 물론 이 사진도 허락을 구하고 찍었지만, 사진기를 들이댄다는 행위 자체가 피사체를 관람 대상으로 대상화한다는 느낌이 들어 싫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시간이고 내 언어적 한계도 한계이니만큼 어떻게 용쓴들 관광에 그칠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쾌적한 곳에서 수족관 보듯 여행지를 관람하는 그런 행위를 피하고 싶었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다). 게다가 캄보디아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내가 돈을 지불하며 동물원 동물 보듯 캄보디아 사람을 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국적인 사진과 특이한 경험을 하는 내 자신을 장식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맥락에서는 윤리적으로 참으로 못생기고 하찮은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후 사진은 거의 유적지 혹은 자연 풍경 사진과 그냥 혹은 순수한 기념 촬영들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이곳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바나나 구운 건 나중에 다른 청년에게 사 먹어 봤고, 일단 바나나 잎 밥(?)을 달라고 했다. 처음에 받고 어떻게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다시 가져가셔서 잎사귀를 벗겨 주셨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가격을 치르려고 하니 2000리엘(0.5달러)이라고 하길래 잔돈 만들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1달러 받으세요 했는데도 바득바득 잔돈을 챙겨 준다.

후에 망고 아주머니도 그랬고 물 언니도, 과일 장수 소녀도 그랬다.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캄보디아 사람은 대부분 참 솔직하고 정직했다. 이걸 착하다고 해야 하나? 왠지 착하다는 말은 어리숙하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남에게 베풀기 좋아한다는 적극적인 뉘앙스가 강해서 쓰기 꺼려진다. 여기 사람들이 나에게 물질적으로 베푸는 일은 없었다. 하긴 그들보다 충분히 부유한 나같은 관광객에게 베푼다는 말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렇다고 대가 없이 받는 걸 잘 하지도 못한다. 나중에 툭툭 기사를 통해 어쩌다가 알게 된 사람에게 내가 먹던 망고스틴 하나를 주려고 했는데 좋아하긴 좋아한다면서도 한사코 안 받다가, 먹고는 싶었는지 자기 도시락의 반찬 하나와 바꾸자고 해서 바꿨던 일도 있었다. 툭툭 기사 쏨난 아저씨도 뭘 사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받다가, 파인애플 내가 먹다가 몇 개 남은 조각을 떠넘겼더니 조금 곤란해 하며 받아들었었다. 그 이후에 만난 기사 사릿에게는 콜라를 사서 선물이라고 안겼더니 왠지 시원한 물로 다시 갚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들 참 소심하다…

물론 관광객용 가격을 받으려는 상인들도 있었는데 다 티가 날 정도로 우물쭈물하며 제시해서 솔직히 약간 우스울 정도였다. 그래봤자 1~2달러 더 받는 것 같은데, 나에게 큰 돈은 아니라도 캄보디아 사람에겐 꽤 큰 돈이다. 캄보디아 사람이 1인당 평균 GDP로 환산해 따지면 한 달에 평균 80달러 선을 번다고 한다. 한화로 따지자면 10만원도 안 된다. 물가가 엄청 싼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성수기가 아니면 관광객은 엄청 줄어들어서, 성수기에 바짝 많이 벌어야 한다. 국가 자체가 여러 원인으로 자급자족이 안 되서 관광으로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니 관광객에게 돈을 더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을 테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가난해서 힘들게 살고 있다면, 그 원인이 꼭 그들에게 있을까? 내가 본 바로는 캄보디아 국민성이 게으르다는 말에 절대 동의가 안 된다. 이렇게 생활이 어려워진 게 내전 때문이 크다고 하는데, 크메르 루즈 공산 정권의 무시무시한 학살 행위도 문제였겠지만 공산권 국가에게 부여되는 부당한 패널티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캄보디아 주민들이 그 부담을 져야 하는 건가? 언제나 대대적인 가난은 세계 전체적으로 책임이 있다. (근데 나는 얼굴 표정만 보면 서울 사람들이 더 힘들어 보인다. 아무리 비위생적으로 누추한 곳에서 살고 있어도 씨엠립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보다는 표정이 편한 것 같다. 외부인으로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같은 날에 이런 일도 있었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동네 사원 근처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엄청 허접한 펜을 하나 사려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1달러라는 거다. “(흠 비싸게 받네…) 그래요?” 이러고 돈을 내려고 하니까 옆에서 남편같은 사람이 뭔가 자기가 쓰던 것 같은, 무지 사용감이 있는 펜을 헐레벌떡 가져오더니 “이건 더 좋은 건데 2달러!” 이러는 거다. 아마 내가 아무 말 없이 1달러에 펜을 사는 모습을 보고 ‘아, 물가 감각이 별로 없는 관광객이구나. 좋은 기회!’ 이런 마음인 것 같았다. 그제야 내가 “에이~ 2달러요? 이게요?” 이러니 굉장히 머쓱한 표정이 되어 그 펜을 들고 그대로 사라지셨다… 나에게 펜을 팔던 분은 갑자기 시원한 물도 사겠냐고 하다가 괜찮다 그러니까 괜시리 근처 사원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하시고…

아무튼 바나나 잎밥으로 대강 배를 채우고 후식 겸해서 덜 익은 딱딱한 망고(아마도?)를 샀다. 망고를 하나 사면 직접 까서 잘라 주신다. 특이한 소스를 함께 주셨는데 나는 별로 입맛에 안 맞았다. 이 망고 파는 아주머니에게 이후로 두 번이나 더 갔는데 정말로 정직하게 장사를 하신다. 근처 바닥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밥에 가까운 걸 먹는 아이가 안타까워서 사실 잔돈 같은 건 그냥 드리고 싶었는데 절레절레 사양하셔서 늘 과하게 다른 것도 사고 만다. 물이 있는데 또 물을 산다든지, 먹지도 않는 탄산음료를 산다든지… 그 아이랑도 조금이나마 으르렁거리며 놀았고, 참 귀여웠는데. 사진을 안 찍은 건 잘 한 것 같지만 기록이 없어서 아쉽다.

더위에 지쳐 선풍기를 틀어 주는 그늘진 곳을 찾아 다시 박물관 근처의 큰길로 나왔다. 카페 겸 밥집을 하나 찾아 아이스 커피를 시켜 망고와 먹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커피가 의외로 되게 맛있어서 놀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캄보디아가 커피도 많이 생산한다고 한다.

너무 좋아서 동영상도 찍음.

한큐에 다 정리해 두고 싶었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더 못 쓰겠다. 생각보다 주절주절 쓰고 싶은 게 많다. 나머지 여행기는 이후에 계속…

혹시 잊어버릴까봐. 사진에 없는 기록해 두고 싶은 것들 : 고마운 한국인 가족, 마사지스트 산차이, 꿀리, 프랑스 언니, Cambodia fried noodle, 11년동안 신상을 지켜 온 아저씨, 따 쁘롬의 시끄러운 한국인들, 영어만 잘 했으면 좀 오래 같이 다녔을 외국인들, 이상한 중국인 남자, 경찰들과 남자들의 예뻐요, 인종 변화, 엄청 소심한 욕, 엄청나게 맛있는 팬케익 만드는 2대, 말린 망고 가게 부녀, 꼬마 여자애의 예술혼, 절대 찢어지는 바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