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 개념이 마음에 드는 이유
모든 진보는 어쨌든 개념을 만드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최저임금도, 시민권도, 복지도 그저 개념에 불과한 것들인데 사람들의 의지가 모이고 어느 순간에 점화가 되면 그것이 마법처럼 현실화된다. 이건 인류가 신기하고 기특하다. 개념이 생기고 그걸 일단 사회가 ‘해 보자!’ 으쌰으쌰가 되면 재원 이런 것들은 결국 마련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른 많은 것들이 그랬듯.
기본소득 의제의 정말 획기적인 지점은 그 명료함과 단순성에서 온다. 많은 사회 진보적 의제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섬세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그 본질에 가닿지 못한다. 주장하는 측과 받아들이는 측 사이에서 오해가 오고 그것들은 결국 그 주장이 얼마나 정의롭건 진보적이건간에 오염되어 퇴보한다.
많이 오염된 개념들은 참 쓰기가 어렵다. 오해부터 풀어야 하니까. ‘진보’나 ‘사회주의’라던가 음… 그러나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이라는 구호가 본질이다. 패러다임 전환에 가깝다. 기승전기본소득이 가능한 것은 이 구호 자체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구호, 이를테면 ‘월가를 점령하자!’는 그 구호만 들어선 점령해서 뭐 할 건지 모르겠고, ‘분노하라!’도 맥락을 제거하면 알 수가 없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도 좋긴 한데 그 세계에 대한 상이 천차만별이라 힘이 안 실리는 느낌에 비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은 아주 뚜렷하다.
* 어떻게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이 좋다는 건 사실 더 말을 보태지 않아도 알겠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이 있다면 좀 더 나은 삶이, 나은 세계가 되리라는 걸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게 되겠어?”다.
솔직히 난 기본소득이 실제로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계산하는 것은 나의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맑스 같은 경제학자나 아무튼 영어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해 주면 좋겠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확신은 중요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구조를 짜진 못하겠지만 그 구조에 대해서 듣고 “그럴듯한데?”라고 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확신만으로는 기본소득이 도래할 수 없을 것 같다. 기본소득의 세계는 결국 현실을 바탕으로 계산을 짜야 하는데 아무리 치밀하게 짜도 아직 오지 않은 세계가 현실의 리얼리티와 싸워 이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확신과 함께 필요한 것이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 욕망?의 노골화 같다. 요구는 대부분 불만족에서 온다. 그리고 불만은 현재의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규정할 수 있어야 생긴다. 시민이라는 개념이 생기면 비시민이 시민이 아닌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 나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이상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대해 힐링(이 단어도 너무 오염됐다ㅡㅡ)이랍시고 떠드는 많은 광경이 끔찍스럽지만 내가 그걸 해괴하다고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후로 주위에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듣고, 직접 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기도 했고, 그에 굉장히 자기혐오가 있고, 있었다. 취업이 안 되는, 끝내 안 될 것 같은 친구한테 무슨 위로를 하겠는가? 7년 이상 회사에 마음 담고 일하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잘린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고작 최저 임금을 받고 모욕을 당하며 착취당하는 회사의 인턴과 알바에게 내가 대체 무슨 위로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위로의 말도 남은 게 없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천천히 무기력해질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기본소득이 떠올랐다. 노조 운동을 포함해 어떤 사회 운동도 주지 못한 상상력이 부풀어올랐다. 이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대한 면죄부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좋다. 자신있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청사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세상은 원래 그래.’ ‘열심히 해 봤자 돌아오는 건 없더라.’ 이런 무기력이 가장 무섭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하라’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아무튼 피가 끓는 느낌을 주지.
조금 이야기가 샜지만… 욕망, 요구의 노골화라는 측면에서, 더 나은 세계상을 명확히 보여주는(그래서 현재에 불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건 미학적으로 참 괜찮은 설득 문구였던 것 같다. 그게 손학규라서 대부분 그 진정성을 믿지 못했지만.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에 부족한 것은 기본소득의 정도, 그러니까 기본소득이 가능한 세계가 어떤 것인지 확언하는 것이다. 음, 기본소득의 액수보다는 기본소득으로 가능할 삶의 질?로 말해 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가장 자극적인 건 액수라서.
* 점화, 현실화
노조에는 적어도 내 편을 규정하고 현실에 당면한 악(자본가)을 물리치게 만드는 구성이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전선이 명확하지 않다. 전선이 필요한 이유는 실제로 그것이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약간 올드한 시선인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일 하자는 식의 서명 운동, 유니세프 후원, 이런 의지들은 양이 많아도 그리 폭발력을 가지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세대론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유용할까? 사실 기본소득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일단 남은 생만 따져 보아도 청년 세대일 것이다. 그 반대는 경제력 있는 장년층일 것이고… 이건 인상비평에 가까운데, 한국에서의 전 세대, 이를테면 386세대의 무기력한 태도?나 더 윗 세대의 먹고사니즘,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청산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사실 증오의 정치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러고 청산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 업계의 가장 대세는 기본소득이 대중의 이해와 지지를 얻고 그걸 바탕으로 한 당이 집권하는 그런 형태인 것 같은데, 그렇게 달성된 기본소득의 속살이 충분히 진보적일 수 있을까?
이 지점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던가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맡겨야겠다.
* 아무튼 나의 관심은: 기본소득을 현실화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1. 일단 기청넷을 후원한다. A2. 주변에 홍보한다. A3. ????
* 기본소득 영화(라고 쓰고 선전물이라 읽는다)
https://sites.google.com/site/basicincomey/act/film/screening_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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