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어여쁜 쓰레기 더미 위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정확히는 생각을 의식 위로 끌어내서 인식해야 한다. 내가 어디까지 재고 있고 어디에서부터 움츠리고 있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됐는지. 이것도 나름의 훈련이라서, 중간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물론 그 와중에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를 부여잡고 있어야겠다.

왜 이것이 당위의 수준까지 갔냐면 그러지 않아서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쓰레기장 위에서 무엇이 이렇게 많이 버려졌나 자책을 한다. 자책은 자학이 되고 연약한 인간인 나는 그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에라 모르겠다 하며 모든 걸 놓고 끊임없이 일회용품을 써나른다. 편리한 일회용품들. 다시 찾지 않을 걸 알면서도 당분간을 버티기 위해 손쉽게 갖다 쓰는, 기필코 쓰레기가 될 가짜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도 하지만 나에게 그건 당장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고 아침에 깨어나는 순수한 고통과 맞설 수조차 없는 나약한 문장이다. 세계는 너무나 잔인하고 외설적이고 무의미하고 혼란스럽다. 조금이라도 삶을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일회성 자재들로 얼기설기 돌려막기 하는 것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 

서경식 선생님은 인생을 걸고 자기만의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셨는데(정확히 이 말인지…) 집은 고사하고 그저 쓰레기밭 대신에 풀 한 포기라도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에는 기적도 구원도 마법도 없다. 인풋만큼 아웃풋이 있다. 빈약한 아웃풋을 아리따운 말로 치장한들 자신만은 그 공허를 안다. 그저 스스로 키우고 가꾼 오롯한 나를 갖고 싶다. 그 내가 더디든 초라하든 아무래도 좋다. 사실 조금 더 바라자면, 그 내가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사랑받을 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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