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삶에 대한 감각

언젠가 ㅇ과 점집에 갔다. 이미 몇몇 지인들에게 이 사주카페의 영험함을 극적으로 체험했다는 간증을 여럿 들은 후라 마지못한 척 가자는 말에 응했었다. ㅇ의 땀냄새는 정말 여전했다. 여름이 거의 다 가는 즈음이었을 것이다. 사주카페는 온갖 사술 아이템으로 촌스럽게 꾸며져 있었는데, 칙칙하고 푹신한 등받이 높은 쇼파 때문인지 카페라기보다는 다방 같았다.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들이키고 책을 뒤적뒤적하고 ㅇ과 잡담을 주고받은지 거진 1시간 이상이 흘러서야 그 점쟁이 아줌마가 우리에게 왔다. 그 사주카페에는 점쟁이가 여럿 고용되어 있었는데 이미 이곳을 거쳐간 지인들에 따르면 그 점쟁이만 용하다고 했다.
점을 보는 데 2만원이나 내야 한다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당시 ㅇ은 대학원을 때려치고 나와 백수로 살고 있었고, 파렴치하고 소심했던 지도교수에 대한 분노가 꽉 차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를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는데 늘 있어 왔던 자학 증세가 점점 심해져서 약간 큰일나겠다 싶은 느낌이었다. 여하간에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와 묻고 싶은 것이 아주 크게 있었다. 나는 사실 그렇지 않았다. 별로 물어볼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친했던 친구 하나가 돌연 절교를 선언한 일이 있었지만 당시엔 그 거부에 조금 화가 났을 뿐 실감하고 있지 못했다. 그 때의 내 가장 큰 문제는 심심함이었다. 점집에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손님이란 말인가. 2만원을 내기로 결정하면서, 그때서야 나는 조금 쑥스러워졌다.
주위 손님들은 풋풋한 내 또래 커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홍대 데이트 코스의 일환인, 레저 스포츠적인 공간이었다. 나는 어색해서 과장되게 점술에 임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절교 선언한 친구와의 궁합이라든가(안 맞으니 그냥 만나지 말라고 했다.), 남자는 언제 찾아 올까요라든가(가을에 두 명의 스쳐가는 남자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잘 맞았다.), 끝내는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것까지 묻고 말았다. 점쟁이 아줌마는 나를 귀찮게 여기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알아봐 준다고 했다. 사실 그게 궁금한 건 아니었지만 봐 주세요, 했다. 2만원이라는 돈도 아까웠고, 뭐 궁금하게 여기려면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공부를 더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왕이면 외국어가 좋단다. 저 그 말은 유치원 때부터 들었는데요!
놀랄 만치 빠르게 끝난 나의 차례가 끝나고 ㅇ의 차례가 돌아왔다. 점쟁이 아줌마는 나와는 생판 다른 태도로 ㅇ을 대했다. 위로하고 구슬리고 공감해 주고 ㅇ의 말에 귀기울여 주었다. 도련님의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에 대해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ㅇ이 부러웠다. 응어리가 생기는 삶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꼈다. 거의 울 듯 점쟁이 아줌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ㅇ의 옆모습이 정말로 100%의 삶 같아 보였다.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심지어는 나에게조차 진지하지 못한 존재같이 느껴졌다. 점쟁이 아줌마는 분명 그걸 꿰뚫어 보고 날 싫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만원도 아깝고 아무 재미도 해답도 얻지 못했다는 총체적 패배감을 감추고 짐짓 쾌활하게 다가올 두 남자에 대해 떠들며 사주카페를 나와 조금 걸었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고 날은 걷기에 적당했다. 일요일 한낮의 합정동 골목은 시끌벅적하다가도 군데군데 순식간에 적막해지곤 했다. 좁고 가파른 생경한 골목길을 걷다가 정말 문득 왈칵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비참할까. 문제가 없는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모든 것들이 가끔씩만 사랑스러운 이유는 뭘까. 자의식 과잉을 혐오하는 나는 자의식 과잉이기 때문이다. 재귀적인 환멸감이 끔찍했다.
그러나 이 포스팅의 운명은 갑작스럽게도 해피엔딩이다. 요즘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맥락을 이해하고 주장해 주는 사람과 만나 놀고 있어서다. 나보다 더 내가 좋아할법한 음악과 영화를 알고, 나보다 더 내가 싫어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할 줄 안다. 내 인생과 마음에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이 좋다고 말해 준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약하고 천박한 나는 그 정도만으로도 가볍게 땅에 안착되어 신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왠지 늘 그랬던 것 같지만, 11월에는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실제로 내 주위 상황은 매우 파헤쳐져 있다. 돈이 아니었으면 회사는 진작에 나왔을 것이다. 조금만 용감했다면 액션을 취했을 것이고, 멱살을 잡고 싶은 사람들도 오랜만에 생겼다. 잘못된 관계도 맺었는데 그게 교정이 될 지도 미지수다.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일이 잦고, 실망과 기쁨과 기대, 스케줄이 가득하다. 그래도 모든 일들이 내 일로 여겨진다. 점집을 갔던 그 때는 없었던 감각이다. 대단한 계기로 바뀐 건 아니지만 내 삶도 대단한 건 아니기에 이렇게 우연히도 갑작스레 삶에 밀착되기도 하는 법이다. 물론 얼마나 갈 지 두고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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