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판타스틱 영화제스러운 수작들
고스트
아아 마치 자외선도 없는 햇살마냥 따듯하고 귀여운 영화였다. 주인공들 모두 캐릭터가 명확하고 예뻐서 빤한 서사나 결말 등이 결점으로 안 보였다. 사랑스러운 유령들과 모디스트 선생님, 이름은 까먹었지만 교장 등이 서로 얽혀 발생하는 하모니가 과하지도 쿨하지도 않게 잘 포장되어,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온 더 잡
지금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점도 있었는데 보고 나와서는 그저 절망적이었다….. 장르 영화의 특성 중 하나인, ‘알고 있다고 치고 넘어가는’ 장면이 시도때도 없이 나왔던 건 그래 넘어가자. 과하게 느끼한 카메라 연출(왜 굳이 저 장면을 위에서도 아래서도 옆에서도 빙 둘러 가면서도 찍는가!), 흥행을 위해서 넣었다라고밖에 볼 수 없는 무의미한 섹스씬, 생명이 없는 기능적인 캐릭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걸쭉한 농담, 감독의 치기어린 감수성 등등 뭐 온갖 싫은 것들이 몇 개도 아니고 모조리 혼합되어 있어서 정신 못 차리고 비명을 질러가며 봤다.
뭐 여기엔 필리핀 특유의 대중 감성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내가 오글거려 하는 그 무엇이겠지. 무튼 느긋하고 그러나 불친절한, 그러나 쉬운, 그런 느와르 액션 영화라고 해 두지 뭐.
카운트다운!
명실공히 이번 부천 영화제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 배우들 연기가 되게 실감났다. 미묘하게 ‘퍼니게임’을 닮았는데, ‘퍼니게임’보다는 훨씬 편하다. 그래도 적절히 중간 중간 코미디를 넣어 주긴 했으니까. 그런데 코미디에서 공포로의 전환이 지나치게 곧바로, 혹은 지나치게 느리게 타이밍이 살짝씩 어긋났던 것 같은데 나만의 느낌일까?
게다가 결말이 갑자기 상처를 봉합하는 형식으로 가 버려서 임팩트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물론 그만큼 마음은 좀 더 편하긴 하다. 해피엔딩이 스트레스 안 받지. 그래서 이 영화의 의도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은 “ㅅㅂ 착하게 살라고 했지!!!” 이런 건데, 감독의 의도가 코미디였다면 방점이 ‘ㅅㅂ’에 있을 것이고, 감독의 의도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어떤 메시지 전달에 있다면 ‘착하게 살라’일 것이다. 감독은 이 두 개 다 넣고 싶어했던 것 같고, 결론적으로는 조금 욕심을 부린 티가 나 버렸다. 그 두 부분이 밸런스가 잘 안 맞아서 ‘착하게 살라’는 게 미묘하게 촌스러워졌다.
아니, 물론 기본적으로는 세련됐다! 어설프게 감추다가 들키기보다는 “ㅅㅂ 착하게 살라고!!!” 이렇게 발칙하게 말하는 게 더 똑똑한 태도라고 본다. 게다가 제작비 등 여건이 안 좋을 때는 더더욱.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기야 다른 영화에 비하면 제작비가 압도적으로 적을 것 같다. 그런데도 영화가 꽉꽉 차 있다니 무시무시한 연출력이다. 서스펜스는 넘쳐났고, 그에 맞춰 음악도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만인이 읽은 소설(?) 성서에 대한 패러디도 맛깔지게 구사해 주셔서 나중에 해석을 맞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으흐흐 이런 거 너무 좋다.
헬벤더스
함께 갔던 지인은 매오 실망하였지만 나는 좋았다. 이런 B급 영화의 소박함이랄까 이런 걸 좋아라 해서 편파적일 수 있기는 한데, 지옥 성자회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느껴졌다. 나중에는 시간 부족 때문인지 빠르게 얼버무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무튼 좀비 나오고 신성모독 나오고 섹스 나오고 센스 있는 장르 비틀기에 저질 유머 나오고 적절한 신파까지, 무튼 이 업계 영화로서 갖출 건 다 갖췄다. 피판에 이런 영화 보러 왔는데 못 봤다면 정말 아쉬울 뻔 했을 듯. (위의 세 영화가 서로 다른 의미긴 하지만 웰메이드라서.) 그치만 감독님 너무 성서 덕후에요. 다 티나요. 나오지 않아도 될 정보까지 나와서 좀 스피디한 맛이 떨어져요. 힝.
여담이지만 왼쪽에서 세 번째 남자 오 마이 내 취향! 이 영화 이후에 이 남자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날 퍼시픽 림 에서 또 보게 된다… 운명?!
21일
정신줄을 여러 번 놓았다……
퍼시픽 림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날 아침에 봤으니 껴 줌.
‘헬벤더스’에는 좀비가 많이 나오지만 찌질한 인간의 물질성이 (너무) 살아 있고, ‘퍼시픽 림’에는 주인공 포함 모조리 로봇만 나온다고 생각될 정도로 인간이 멸종되어 있다. ‘퍼시픽 림’은 이전에 본 ‘아이언맨’이나 ‘다크나이트’ 같은 히어로물과는 또 결이 달랐다. ‘아이언맨’이나 ‘다크나이트’는 그래도 현실에 살고 있는 공감 가능한 인간을 묘사하는 데 애를 썼다. 반면 ‘퍼시픽 림’에는 인간적 교류가 없다시피 하고 온갖 장르 코드들만 넘쳐난다. 한국에서는 현실과 맞물리는 퓨젼 판타지를 제외하면 판타지를 위한 판타지랄까, 무튼 순수 판타지는 잘 안 먹히는 감이 있는데, 그래서 이 영화도 패망할 것 같다.
트위터에는 “솔직히 미스코리아 대회가 재미있지는 않잖아? 엄청나게 예쁘고 진선미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 정도라고 본다. 다시 안 볼 영화라는 얘기. 그런데 예쁜 정도가 어마어마하다…” 라고 써 놓은 바 있다. 이와 함께 넣고 싶은 것들을 다 넣었다는 점에서 또 어마어마하다. 현실화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로봇 키드의 로망이 컴퓨터 기술로 한꺼번에 실현되는 순간을 본다. 로봇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권력을 가질 세대가 되니 이런 영화가. 하긴 옛날부터 문화를 즐기다 못해 전문적으로 만들게 되는 사람들은 오타쿠가 많았겠지…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오타쿠라는 건 세대가 바뀌면서 만들어진 개념 같다. 옛날에는 오타쿠라는 집단에 뭔가를 남들보다 좀 더 좋아하는 수준의 대중형 오타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대가 바뀌고 오타쿠는 진성 오타쿠만 살아남은 지금(특히 한국에서), 그렇기 때문에 퍼시픽 림의 흥행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게 아닐까.
Eat
마음이 아픔. 특히 한국에서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여자는 이거 무슨 말인지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별로 난해하지도 않고 은유적이지도 않고 직설적임.
Butterfly
어… 나중에 감독 GV 할 때 보니까 감독과 매우 닮아 있는 게 귀여웠다. 나로서는 촌스러운 문제 의식이었지만 호주 사람으로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 주제를 제외하고 생각해 본다면 이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질감 자체는 정말 좋다.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 시도 못 할 암울한 색감도 그러하고.
예수 대 좀비
예상보다 더 격렬하고 극단적이고 통쾌했다! 아휴 깜찍해라. 욕심 안 부리고 잘 찍었음. 성서 패러디를 장르적으로 깨알같이 해냈다. 물고기가 두 개가 되는 장면과 살아난 나자르 보고 소리지르는 장면 너무 웃겼음. (그래도 이쯤 되면 아 이제 신성모독 개그는 지겹다는 생각이…)
더티혜리
이것도 어디 예술 학교 졸업 작품인가 그랬는데 와 전혀 장면 장면이 흘러가는 데 어색함이 없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연출 진짜 잘 한 것 같다. 호쾌한 액션과 비틀린 느와르, 명쾌하고 빠른 전개, 멋진 주인공, 그리고 덤덤하지만 따듯한 시선까지, 아니 어떻게 이런 예산으로 이런 수작이! 나중에 Dirty Harry라는 액션 영화를 패러디한 제목임을 알았다. 언제 챙겨 봐야겠다.
GV 때 질문이 너무 없어서 하나마나한 질문을 던졌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답변이 나왔다. (감독님이 해사하게 웃는 미남이었다.) 그런데 함께 간 동행이 나보다 어릴 거라고 그래서 대충격… 단편 별점을 여기다 던지고 왔다.
밀청
뭐 좋은 시나리오고 잘 찍었고 하는 건 알겠는데 나는 사실 이렇게 소설적인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영상이 나레이션의 삽화처럼 쓰이면 그냥 낭비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튼 영화의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촘촘하고 심오했다. 시나리오 쓴 사람이 굉장히 은유에 능한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미몽
이쯤에서 많이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 자다 말다 했다. 무서운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성공? 역시 어두운 조명이 싼티가 잘 안 나는 걸까? 화면만 보자면 상업 영화의 부분을 뚝 떼다 놓은 느낌이었음.
변태 가면…
인생을 통틀어 영상물에서 받은 가장 강렬한 충격이었다. 예상보다 더한, 초 무시무시한 변태 이미지와 발상들이 난무했다….. AV를 처음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으악. 일본. 어떻게 이런 영화가 버젓이 스폰을 받아서 찍어질 수 있는 건가! 좀 부러운 마음이 들긴 하… 아니 그래도 변태지만.
변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선악 판단은 스리슬쩍 무시하는 게 약간은 의뭉스럽다.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다. 여학생들을 성추행하는 것도 변태, 그런데 걔를 물리치는 주인공도 변태다. 둘의 차이점은 (엄청나게 단순한 수준의) 정의감 유무인데, 그것조차도 현실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청순 로리한 소녀를 위한 사랑으로 쿨하게 포장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변태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혹은 가볍게 희화화하는 정서를 가지면 안 되는데. 상대방을 조롱하는 유머가 도를 넘어섰을 때 특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이 영화는 “난 판타지야!!!”를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으니 이런 걱정은 노파심이고 잉여로운 걱정일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응원의 마음이 더 들었다. 변태지만 괜찮아! 변태지만 멋있어! 변태지만 사랑을 하자! 흑흑…
참, 일본식 개그의 대부분이 나랑 코드가 안 맞는 것 같다. 다들 깔깔 웃을 때 혼자만 ‘이게 재밌나?’라는 생각을 한 게 많아서 좀 소외감 들었음. 마루야마를 예매 못 한 게 그렇게 한스럽지 않았던 이유.
22일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리얼리즘 영화를!
사랑인 줄 알았어
주인공이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등장하는 첫 씬이 많은 것을 상징한다. 맞지 않는 분장을 하여 얼룩덜룩해진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불쌍하다. 영화는 이 아이의 애처로운 발악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처참함을 더욱 깊이 느꼈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있을 정도였다.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그 향상 욕구에서 나오는 허세와 거짓말, 그 허세와 거짓말을 (좋아하는 남자를 포함한) 모두가 알아채고 알게 모르게 비웃는 장면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아버지조차 아이를 조롱한다. “관심병 환자처럼 굴지 마!”), 다른 이들에 비해 성적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열등감, 성적인 호기심, 수줍음 등등… 어휴 보면서 좀 힘들었다. 내가 성장하면서 적게든 많게든 가졌던 여러 찌질한(?) 마음들이 잔인하도록 효과적으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마음들에서 졸업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성장통의 주범들을 세련되게 숨겨 온 것이 아닌가? 스스로조차 모르도록?
영화의 톤은 참으로 느리고 잔잔하다. 빠르지도 않은데 유머도 신파도 에로함도 없다. 그저 이 어린 아이의 출구 없는 성장을 묵직하게 목격하게 될 뿐이다. 힘들 수밖에.
페이퍼 보이 : 사형수의 편지
‘6월의 뱀’을 취소하면서까지 본 영화기에, 게다가 존 쿠삭, 잭 애프런, 니콜 키드먼 등 초호화 출연진이 나오기에 꽤나 기대하고 봤다. 그래서 그런지 자못 심심한 영화라고 느꼈다. 영화는 어떤 흠집 없이 매끄럽게 결말을 향해 흘러가긴 한다. 주연 배우들 모두 연기 좋았고, 음침한 늪 배경도 잘 구현됐다.
그런데 원작을 안 읽어 봐서 모르겠지만 주인공과 여자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비중이 높나? 전체적으로 좀 더 음울하고 미스터리어스해져야 할 것 같은데 추측이지만 로맨스의 비중을 높인 탓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매력이 감소한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뭐 일단 잭 애프런의 탄탄한 몸과 니콜 키드먼의 섹시한 금발 백치미 연기, 존 쿠삭 사이코 연기 등은 충분히 돈 내고 감상할 만하다.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전날의 ‘Eat’에서 나왔던 주인공처럼 얘도 자꾸 문화적으로 먹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지는 걸 먹는 애다. (비닐, 샤프심, 분필, 똥 등등) ‘사랑인 줄 알았어’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랑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를 먹으면 안 될 걸 먹는 것으로 주목받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Eat’이나 ‘사랑인 줄 알았어’보다는 훨씬 발랄하다. 일단 나이가 훨 적어서 감정 이입의 대상이 잘 안 되고, 뭐 기본적으로는 어린 아이의 욕구가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이렇게 어이없는 시도들을 하면서 자랐겠지. 이런 흑역사들을 다들 한두개씩은 지니고 있겠지.
어느 개인 날
이 영화는 이곳에서 이혼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 더 나아가 점잖은 엘리트가 나이 들어가는 여성으로서 사는 것의 어려움이 전면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그저 피해자로 묘사되는 게 아니다. 내 경우에는 주인공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서 그런지 동정도 애정도 안 가고 사실 싫은 부분이 되게 많았다.
삶의 고통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초조하게 밤길을 서성이며 보내는 이 여성은 ‘사랑인 줄 알았어’의 주인공과도 여러모로 닮아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성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범생 타입이다. 바람폈다고 추측되는(?) 이혼한 남편에게 화내는 것도 못하고, 외로워서 밤중에 불러낸 친구와 술김에 섹스하지도 못하는 그런 아줌마. (영화 내내 이 여자가 가장 크게 화낸 상대는 길막하고 있었던 택배 기사다.)
게다가 찌질하다. 연락을 씹는 친구에게 살짝 짜증내다가도 그녀의 남편이 등장하자 이혼했다는 열등감 때문인지 순식간에 짜증을 접기도 하고, 정남에게 이혼한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다가도 “솔직하게 살라”는 정곡을 찌르는 말에 팩 삐져 돌아선다. 타인에게 숨겼던 열등감과 피해 의식은 애꿎은 장님 아버지와 방을 어질러놓은 딸 등에게 표출하고, 무튼 여러모로 찌질하다…
그래도 다들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든 진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 싶다. 마지막 씬인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은 그저 그런 여자 A들이 이렇게 사소한 투쟁을 하며 살고 있음을, 고상해질 수 없는 일상의 더러움을 세탁해가며 꾸물꾸물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아 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수많은 여자 A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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