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자뻘 되는 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이 내 손자들과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여러분이나 내 손자들이나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기업들과 정부에게 순진하게 사기를 당하고 있다.
지금 지구는 엉망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항상 엉망이었다. ‘행복했던 시절’ 따윈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지난 시절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날 쳐다보지 마라. 그냥 이렇게 됐구나.”
늙은 바보들은 우리가 어떻게든 대공황이나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같이 흔히 말하는 유명한 재난을 겪어낸 후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자살까지는 아니어도 파괴를 유도하는 이런 그릇된 믿음은 소설가들 때문에 생겨났다. 수많은 소설에서 끔찍한 불행을 겪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이제 나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남자가 되었다. 끝.”
2차 대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댄 삼촌은 내 등을 철썩 치면서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라고 말했다. 순간 삼촌을 죽이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정말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댄 삼촌은 남자는 전쟁에 나가봐야 어른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삼촌도 있었다. 아버지의 남동생인 고 알렉스 삼촌이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알렉스 삼촌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생명보험 외판원으로 정직하게 일했고, 자식이 없었다. 그는 아는 게 많았고 현명했다. 알렉스 삼촌이 무엇보다 개탄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여름에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위윙거리는 꿀벌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면 삼촌은 즐거운 이야기를 끊고 불쑥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그래서 지금은 나도 그러고, 내 자식들도 그러고, 내 손자들도 그런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건대,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나라 없는 사람> pp.127-129
너무 많이 인용했나. ;; 이게 단지 소박한 삶의 행복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님을, 간신히 꺼낸 행복의 이야기임을, 커트 보네거트의 맥락을 읽어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평택집에 있는 이 책을 가져가기에는 너무 짐이 많아 그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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