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완벽한 예찬이 주는 고양감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 떠오른 건 최근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였다. 2010년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사랑을 창안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고 알랭 바디우의 ‘재발명된 사랑’에 열렬히 동의하게 됐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요새 자꾸 선 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소개팅을 종용하고 있다. 빨리 이 괴로움을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니 전전 직장의 사진기자분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을 추천해 주심. 그 외에도 이와 비슷함. 허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튼 다시 읽은 <사랑 예찬>은 그 어떤 콘텐츠보다 나를 위로했다. 음악은 에피톤 프로젝트. 잘 몰랐는데 균형감이 있다. 너무 격앙된 것도 너무 체념하는 것도 너무 쿨하거나 슬픈 것도 지금은 좀 무리고 그 사이 어딘가를, 생각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될 때 가슴의 통증이 좀 낫지 않게 될까 싶다.

아래는 <사랑 예찬> 발췌..

—————————————-

사랑은 예컨대 진리의 구축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가 아닌 둘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경험하게 될 때,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동일성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차이로부터 검증되고, 실행되고, 체험된 세계란 과연 무엇일까? (32)

사랑의 낭만적인 개념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다소간 이 개념은 만남에다 사랑을 소진시켜버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만남에서,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외재성의 한순간을 맞이하여 불타버리고, 소진되며, 동시에 소비된다는 말입니다. (..) 저는 이 개념을 사랑에 대한 진정한 하나의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예술적 신화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사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랑에 관한 사유에서 불가사의한 것은 바로, 사랑을 완수할 그 기간에 관한 문제에 놓여 있습니다. (..) 물론 시작되는 그 순간의 황홀감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속되는 하나의 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제 증거로 욕망을 포괄하기를 원합니다. 두 몸이 취하는 의례는 따라서 말의 물질적 담보인 셈이며, 그것은 또한 삶의 재발명에 대한 약속이 육체의 밀착을 통해서 지켜져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무엇입니다. (41-47)

이 사랑 이야기들이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되는 이유는 사랑에 보편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보편적인 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랑이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것과 연관된 진리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런 한편,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우리 역시 사랑하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진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일지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52)

사랑을 선언하는 것은 ‘만남-사건’에서 진리 구축의 시작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며, 만남의 우연을 시작이라는 형식 안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선언은 필연적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동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또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다시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일 수 있습니다. (55)

말라르메는 시를 “낱말에 의한 낱말로 극복된 우연”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랑에서 충실성은 이러한 끈질긴 승리를 지칭합니다. 다시 말해 지속성의 고안 속에서, 한 세계의 탄생 속에서, 나날 이후의 나날로 인해 극복된 만남의 우연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57)

전반적인 상황이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복고반동으로 흐를 때 관건으로 부각되는 것은 바로 정체성입니다. (..) 사르코지가 포기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정체성입니다. (..) 차이를 만들어내고, 고유하며, 반복을 전혀 동반하지 않고서, 고정되지 않고 낯선 무언가에 대한 사랑을 반복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숭배와 대립시켜야만 합니다. (107-108)

Category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