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의 식자층 여성의 유형 중에 ‘순진한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인도 여행과 라틴계 남자를 좋아하면서 에스닉 풍의 옷을 입고 다니는’ 유형과 ‘귀엽고 털털하며 미드와 야구를 좋아하고 달콤한 것을 달고 살면서 로맨스풍 책을 즐겨 읽는’ 유형은 딱히 특정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클리셰에 가깝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유형도 마찬가지로 진부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유형을 만들어내라면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무의미하다. 취향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고 어떻게 개성이 생기는 건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3분 요리처럼 간편하게 만들어진 트렌디한 이미지를 정체성으로 이용해먹는 것만은 왠지 끔찍하다.
물론 여전히 취향이 능력이라거나 교양의 수준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취향의 선악을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 좋아하는 것들을 줄줄 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의 패배감도 포함해서 복수에 가까운?) 의구심을 품게 된다. 어떻게 그 짧은 인생 동안 그렇게 많은 것을 좋아할 수 있나? 취향이 너무 넘쳐나서 이상하다. 난 별다르게 좋아하는게 없는 것 같아서 (그나마 있는 것 같은것도 주저하게 되고) 종종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고 자학하게 된다.
약간 다른 이야기기도 한데,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를 꽤 좋아한다. (취미랑 취향이랑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취미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린 까닭에 쿨하면서, 그럼으로써 사랑이라는 것을 지켜낸 것이 안 쿨하다. 그러나 그 지켜낸 사랑은 너무나 약하고 불안한 것이다. 어쨌든 ‘물을 준 화분처럼 예쁘게 웃어보이는’ 그녀가 아니면 노래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취미/취향이 늘 그렇듯 개인 수준에 의존하는 것이다. ‘니 취향 아님 말고’, 혹은 ‘내 취미거든’,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즉 사람들이 이 노래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개인-심미적이다. (분명 현실에는 존재할) 비루먹은 배경을 모두 제거하고 사랑을 취미라고 말하기 때문인거다. 그래서 이 노래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나에게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한다. 폭력적이지 않다는 면에서 좋거나 나쁘다.
어쩌면 트렌디하다는 것 외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취미들보다 오히려 사랑이 취미라고 하는 것이 더 절망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가을방학 정말 멜로디 좋다구. 누구랑 그런 이야기 했더라? 우리같은 프롤레타리아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천박한 감수성이라고. 클래식으로 치면 바흐나 헨델보다는 멘델스존이나 브람스, 모차르트 등을 듣겠지. 사실 취미가 사랑이라고, 예쁜 멜로디에 울컥거리는 마음으로 말해보는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어. 강하고 고귀하지 못해서 처량맞다.
근데 결국 뭘 말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