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도시에서 사는 어려움

특히 요즘 더욱 더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는 이제 틀렸다는 생각이. 산업화된 도시에서 사는 나는 너무 큰 괴리를 떠앉고 있다. 가끔은 이게 좀 너무한 부담이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무엇보다도 채식을 하(려고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욱 괴롭다. 채식을 해도 안 해도 문제다. 채식을 안 하면 다시 고기를 그냥 공산품 고기로 봐야 하는데 오랫동안 고기들을 동물의 도축하는 모습과 연결지어 생각해 온 나로서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채식을 한다고 동물과 고기의 어려운 삶이 점차 나아진다는 것도 잘 모르겠는데다, 나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싼 가격에 식료품을 사야 하고 그러면 고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것도 사 먹게 된다. 어쩌면 여기 내가 사는 곳의 기후나 위치 상 잡식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채식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일인 동시에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상상을 해 본다.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미미하고 만나는 사람은 모두 익히 아는 사람인 중세적인(?) 공동체에서, 키우고 거두고 먹는 것까지 내가 모두 보고 느낄 수 있는 생물들과 함께 살아왔다면, 나는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보다 생의 주기가 짧은 생물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보고 자라고 그래서 몸으로 알고 있다면, 나는 이 생태계의 일부로서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류를 먹는 나는 어제 멸치국수를 해 먹었는데, 멸치의 머리를 따는 것조차 조금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소, 돼지, 닭의 머리를 비틀어 딸 수 없다. 곤충도 너무 무섭다. 스스로 죽일 수 없는 생물을 먹고 있는 것은 정말 괴이한 일이다. 도시 인간은 절대로 동물이 아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인간 종이 올라 있다곤 하지만 정점에 올라 있는 것은 산업 문명이다. 나는 심지어 식물을 재배해 먹고 있지도 않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간임에 틀림없다.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식품과 사회 수업은 그런 맥락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이번에 옥수수에 대한 다큐를 보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서 부모님께도 추천해 드렸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고지혈증이 좀 나아지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이런 것은 정말 마음이 좋아지는 일이다. 다행이었고 또한 서글펐다. 다큐에서는 옥수수가 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건 음식도 옥수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효율성이 높은 사료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효율성이 높은 사료’라는 것은 어떤 현상일 뿐이고 사실 그것은 옥수수다. 그러나 옥수수라는 생물의 고유한 모습과 특징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잊혀진다. 옥수수는 옥수수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것으로 연명하고 있는 나와 인간들과 가축들이 불쌍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마음은 계속되고 있다. 나와 우리 아버지가 이상한 버터와 고기를 안 먹고 ‘오메가-6이 적은 음식을 먹고 있어 다행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최선인가?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고 채소를 뽑아 먹어서 ‘글로벌한 식품 체계에 종속되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최선일까? 물론 둘 다 매우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씁쓸함은 남는다. 나는 너무나 도시 사람이다. 도저히 이 문명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가지고 싶은 직업도, 즐기고 있는 문화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 도시에 있다. 병에 걸린 사람일수록 병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이 병이 내 인생에서 나을 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수업 코멘트였음. 맨날 생각하고 말하던 걸 그냥 썼다. -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