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카뮈, 작가수첩 2권

카뮈의 작가수첩은 마치 현대의 블로그를 연상케 하는데 그것은 또한 나에게 있어 사랑하는 대상의 잠언과도 같은 지위를 점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그가 있는 이상 정신적 고아가 될 수 없다.

도덕적이면서 또한 솔직해져야 한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고 지드는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광기가 불러주고 이성이 받아쓰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것들이다.” (11)

용기의 결핍에는 언제나 어떤 철학이 있다. (31)

미술 비평은 문학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서 회화의 언어를 말하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그때 그것은 문학이 된다. 다시 보들레르에게 되돌아와야 한다. 인간적인 전환, 그러나 객관적인 전환. (31)

몽테스키외. “세상의 어떤 어리석음들은 그보다 더한 어리석음들이 차라리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다.” (35)

도가 지나친 성은 세상의 의미 없음의 철학으로 인도한다. 순결은 반대로 그것(세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68)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라고 스탕달에 이어 니체가 말했다. 그러나 행복 그 자체가 없다면 아름다움이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74)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아는 지금 그는 가진 것을 박탈당한다. 소유의 조건은 바로 무지다. 심지어 물리적인 차원에서조차 : 우리는 오직 미지의 것만을 제대로 소유한다. (78)

니체. ─결정적인 그 어떤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근거했을 때가 아니고는 성립될 수 없다. (80)

사회 비판과 반항을 발전시킬 것.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들은 피크닉을 가듯이 서사시적 상황에 안주한다. 그들은 엄청난 재앙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상상하는 처방들은 겨우 코감기 정도의 수준이다.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발전시킬 것). (84)

K(아마도 키에르케고르일 듯?)에게 있어서 마음의 순수함은 바로 통일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성과 동시에 선(善)이다. 하느님의 밖에는 순수함이란 없다. 결론 : 그렇다면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나는 선과 거리가 멀고 통일성을 갈구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92)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아니 적어도 소크라테스가 대표하는 것을 옹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의 부정인 가치들로 그들을 대체하려고 위협하는 시대의 기미가 느껴지고 니체 자신이 원치 않는 승리를 거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어쨌건 니체(비앙키, 《철학의 기원Origine de la Philosophie》, 208) 참조 :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소크라테스가 내게 어찌나 가깝게 느껴지는지 나는 거의 끊임없을 정도로 그와 싸우고 있다.” (97-98)

용기를 관능으로 만든 유럽인 : 그는 자기 도취에 빠진다. 구역질난다. 진정한 용기는 수동적이다. (108)

우리는 철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만 주석을 가진 것이다. 철학에 전념하던 철학자들의 시대가 가고 철학자들에 전념하는 철학 교수들의 시대가 왔다고 지적한 에티엔 질송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태도에서는 겸손과 동시에 무력함이 엿보인다.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라는 말로 책을 시작하는 사상가가 있다면 그는 웃음을 살 것이다. 오늘날 아무런 권위, 인용, 주석 등에 기대지 않은 채 나오는 철학 서적이 있다면 그것은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지만……. (108-109)

나는 아름다움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그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들 앞에 서면 약해진다. (116)

교훈 :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저의를 뻔히 알면서 그들과 함께 살 수는 없다.
모든 집단적 판단을 한사코 거부할 것. 사회가 갖다 붙이는 ‘주석’의 국면 한복판에 순진무구함을 가져올 것. (129)

발발하는 사건들에 절망하는 사람은 비겁자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을 신뢰하는 사람은 미치광이다. (131)

늙는 가슴. 사랑했지만 그래도 그 무엇 하나 구원받지 못한! (168)

니체는 말한다. “신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이 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38)

팔랑트(S.I.). “휴머니즘은 감정의 영역으로 사제적인 정신이 침범한 결과다……그것은 성령이 지배하는 얼음같은 차가움의 세계다” (267)

극단적 도덕성은 그의 정념들을 말살하는 것이다. 더 심오한 도덕성은 그 정념들에 균형을 부여하는 것이다. (293)

병이 다 나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가 이렇게 재발하니 낙담해야 마땅하다. 과연 그 때문에 나는 낙담해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낙담의 연속이다 보니 웃음이 난다. 결국 나는 마침내 해방된 것이다. 광기도 해방이다. (348)

자신의 원고를 두 번 불사르는 클라이스트……. 만년에 장님이 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끝에 가서 기억을 상실하여 알파벳을 다시 배우는 입센……. 용기를 내라! 용기를 내라! (350)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그렇게 하듯이 정신적 고통에 자신을 맡기는 그런 순간들. 꼼짝도 않고 드러누워서, 의지도 미래도 없이, 그저 고통이 오래오래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355)

코미디. 지금까지 본능적으로 실천해온 덕에 대해 공적으로 보상받은 남자. 그때부터 그는 덕을 의식적으로 실천한다. 큰일났다.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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